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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로 말씀읽기에 관해 위트니스 리를 인용함

기도로 말씀읽기에 관해 위트니스리를 인용함

성경의 본질에 관한 인용문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성경을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성경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들과 다르다는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교과서는 단지 흰 종이에 까만 글자이고 단순한 지식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은 하나님의 영감이며 하나님의 영적 호흡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령한 젖이며 생명의 떡이다. 영과 생명이며 심지어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때 우리는 그 영을 접촉한다. 우리가 그 영을 접촉할 때 성경은 우리의 실제적인 후원자이다. 우리는 단지 영적 호흡만을 호흡하고 신령한 젖을 먹고 영적인 음식을 먹고 그 영과 생명을 받을 뿐 아니라 우리를 지원해주고 우리의 생각과 사고들을 만족시켜주는 분명한 말씀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성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도 있다. 우리는 이 둘을 나눌 수 없다. 만약 우리가 매일 매일 주님의 말씀을 읽는다면 주님의 말씀은 우리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알고 이해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한 지식, 영문판 p.17-18)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흑백의 글자가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바로 그 호흡이며 심지어는 하나님이 호흡하심이다. 오직 우리가 하루종일 주님과 지속적이고 개인적이고 살아있고 친밀한 접촉을 갖고 있을 때만 그분을 호흡함으로 참되게 사는 것이다. 우리의 물질적인 생명은 우리의 호흡에 달려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그는 죽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분을 호흡함으로 그리스도를 산다.

그러나 우리가 호흡하는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신가? 그분은 그 영안에 계시고 그 영은 말씀안에 체현되셨다. 우리가 단지 성경을 문자로 연구하는 방식이 아닌 살아 있는 방식과 주님을 호흡하는 방식으로 말씀앞에 나아올 때 마다 우리는 그분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러면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과 생명과 풍성들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 온다. 그 결과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우리는 그분으로 적셔지고 그분과 우리는 하나가 된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분과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하던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한다.

하나님의 율법을 다루며 시편 기자들은 그들 자신을 주님께 열고 율법을 하나님의 산 말씀으로 여기며 하나님 자신을 접촉했다. 시편은 기도의 영과 영감과 하나님께 울부짖음으로 가득하다. 기도와 찬송안에서 시편기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숙고했다.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요소는 그들 안으로 옮겨부어졌고 그들은 그 요소로 적셔지고 침투되었다. 그들에게 율법은 단지 요구나 정죄나 규례들이 아니라 신성한 생명 공급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었다. 시편기자들이 주님을 사랑하며 추구하는 자들이었기에 그들은 신성한 인격으로 적셔졌다. 그럴 때 그들이 했던 모든것은 하나님의 이름안에서 한 것 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다루심으로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능을 체험하였다.

(위트니스 리, 출애굽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683-684)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단지 흑백 문자로만 취하고 성경을 읽으며 직접적으로 주님을 접촉하지 않는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이 없는 책이 될 것이다. 바울은 “의문(원문은 letter: 글자)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3:6)고 말했다. 이 구절에 글자(의문)라는 헬라어 단어는 바울이 디모데 후서 3장 15절에서 성령을 말할 때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단어이다. 만약 성경을 글자로만 취한다면 죽이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영은 생명을 준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의 영안에서 주님을 접촉하면 말씀은 우리에게 영과 생명이 될 것이다. 우리의 영적 체험에서 이는 하나님의 호흡이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마다 우리는 말씀의 근원을 접촉해야만 하고 이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다.

(위트니스 리, 출애굽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661-662)


“하나님이 호흡하심”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하나님의 호흡임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은 영(요6:63), 뉴마(pneuma), 호흡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영이신 하나님의 체현이다. 그 영은 그러므로 성경의 바로 그 본질과 실체인데 이는 인(phosphorus)이 성냥의 본질적 실체인것과 같다. 신성한 불을 피우기 위해 성경의 영과 우리의 영이 “부딪혀야” 한다.

그 영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성경은 또한 그리스도의 체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시며(계19:13) 성경은 하나님의 씌여진 말씀이시다(마4:4).

(위트니스 리, 디모데 후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51)


요한복음 5장 39-40절에서 주 예수님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성경은 주 예수님의 증거라고 말한다. 주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때 유대인 교사들과 인도자들은 성경을 상고하는데 열심이었다. 그들은 단지 읽은 것이 아니라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성경을 상고하고 연구했다. 하지만 주 예수님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너희는 영생이 성경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이 그리스도인 나에 대하여 말하는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성경에 영생이 있는 이유는 성경의 내용이 나, 주 예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나, 주 예수만이 영생이다.”라는 의미이다.

영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단지 영원한 축복이 아니다. 영생은 창조되지 않고 파괴될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이다.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다. “너희 유대인 선생들은 성경 안에서 영생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에 대하여 증거하는 성경을 상고하지만 나에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이것은 사람들이 생명의 주님을 접촉하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참된 필요는 동시에 주님 자신과 그분의 말씀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나눌 수 없다. 만약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주님을 나눈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 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이 그분의 말씀의 내용이심을 보아야 한다. 그분의 말씀은 그분의 표현이시며 담는 그릇이다. 성경은 병과도 같고 주님 자신은 병 안에 든 물과도 같다. 오늘날 여러분이 병을 갖고 있지 않다면 물을 마실 수도 없고 물을 갖고 다닐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물을 마시지 않고 병만 들고 있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물을 누리기 원한다면 반드시 병을 들고 물을 마셔야 한다.

(위트니스 리, 영안에서 주님과 상호 거하는 삶, 영문판 p.100-101)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내게 오기”와 나뉠 수 있다. 유대 종교는 성경을 숙고 했지만 주님께 오기를 원치 않았다. 이 둘은 함께 해야 한다. 성경이 주님에 대해 증거하기에 주님으로부터 나뉠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을 접하지만 주님을 접하지 않을 수 있다. 오직 주님만이 생명을 주실 수 있다. 우리는 결코 주님 자신으로부터 성경을 나눌 수 없다. 우리가 성경을 상고할 때 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 자신께 나와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상고하고 주님을 접촉하는 것이 한 가지가 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상고할 때 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을 주님께 열어드려야 한다. 우리의 눈이 말씀을 읽고 있는 동안 우리의 생각은 그것을 이해하고 우리의 영은 성경을 통해 주님을 접촉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그럴때 우리는 우리의 지성으로 흑백의 글자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안에 생명을 갖는다.

(위트니스 리, 요한 복음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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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장 17-18절에 관한 인용

17절에서 바울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여섯 개의 항목 중에 이것만이 대적을 공격하는 유일한 무기이다. 검으로 우리는 대적을 궤멸시킨다. 그러나 먼저 검을 드는 것이 아니라 첫번째로 허리띠를 띠고 흉배를 붙이고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쓴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완전히 보호되고 구원을 우리 분깃으로 받을 때 성령의 검을 받을 수 있다.

17절에서 관계대명사가 수식하는 말은 영(Spirit)이지 검이 아니다. 이것은 영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내고 둘 다 그리스도이다(고후 3:17, 계19:13). 만약 내가 이 구절을 쓴다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검”이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했다. 여기서 언급한 검은 성령의 검인가 아니면 말씀의 검인가? 대부분의 독자들은 바울이 검이 말씀이고 성령이 검을 휘두른다고 말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 구절을 수 년 동안 이해해 왔었다. 나는 내가 아니라 성령이 검을 사용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이해에 따르면 검이 말씀이고 검을 사용해 대적을 치는 이가 성령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성령이 검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도록 돕는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것은 여기의 뜻이 아니다. 정확한 의미는 성령이 검이지 성령을 사용하는 이가 검이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또한 검이다. 검은 성령이고 성령은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셋이 하나임을 본다:검, 성령, 말씀.

이 메세지에서의 나의 중심 부담은 이 것이다. 말씀은 성경이다. 하지만 이 말씀이 단지 인쇄된 글자라면 이는 성령도 아니고 검도 아니다. 17절에서 사용된 말씀의 헬라어 단어는 레마(rhema)인데 이는 어떤 상황에서 그 순간 성령이 하신 즉각적인 말씀이다. 불변한 성경의 로고스의 말씀은 즉각적인 레마가 되고 이 레마 는 그 영이 될 것이다. 그 영이 되는 레마 는 대적을 조각내는 검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느 특정한 구절을 읽고 또 읽어도 단지 글자로된 단어인 로고스 로만 남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어느날 이 구절은 우리에게 현재의 즉각적이고 살아있는 말씀인 레마가 된다. 그 때 이 레마는 그 영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또한 헬라어 단어 레마를 사용한다. 즉각적인 현재의 말씀은 그 영이다. 이러한 말씀이 검이다. 그러므로, 검, 그 영, 말씀인 이 셋은 하나다. 더욱이, 그 영이 아닌 우리는 이 검을 사용하여 대적을 죽인다.

그리스도인 체험안에서 말씀과 그 영은 항상 하나여야 한다. 말씀없이 그 영을 취한다고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거짓이다. 내 체험에서 나는 대부분 말씀을 통해 그 영을 받았다. 내가 살아있는 방식으로 말씀을 접촉할 때 그것은 내게 그 영이 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 영 없이 말씀을 취한다. 이것 또한 잘못되었다. 꽃을 가꾸기 원하는 사람들은 씨앗과 씨앗에 담긴 생명 둘 다가 필요하다. 씨앗과 씨앗안에 있는 생명을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명을 갖기 위해 반드시 씨앗이 있어야 한다. 말씀과 그 영의 관계는 씨앗과 생명의 관계와 같다. 우리는 반드시 둘 다를 갖고 있어야 한다. 주 예수님은 그 영과 말씀 둘 다 이시다. 그분이 말씀되시지 않고는 그 영이 아니시며 그 영이 되시지 않고는 말씀이 아니시다.

그분이 말씀과 그 영 둘 다 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이해할수 있는 생각과 받아들이는 영으로 창조하셨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생각과 영을 둘 다 사용해야 한다. 성경읽기로 우리의 생각을 사용하고 기도함으로 영을 사용한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 모두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기도로 읽어야 한다. 나는 기도로 말씀 읽기를 통해 내 영이 강해지고 대적을 삼킬 준비기 되어있음을 간증할 수 있다. 나는 단지 내 영을 사용할 뿐 아니라 내 생각을 사용해 말씀을 숙고한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은혜와 진리가 4장에서 언급되고 사랑과 빛이 5장에서 언급되는지에 대해 물을 수 있다. 또한 이것에 관해 기도할 수 있다.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 마다 내 영이 더 강건해 지고 성령의 검을 사용해 대적을 더욱 치고 싶어 한다. 내 말 속에 대적을 산산조각낼 검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와 평안의 복음의 굳건한 기초와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의 여섯 항목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전신 갑주로 장비될 때 우리는 대적의 공격에 맞설 수 있고 공격할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신 갑주의 항목 후에 바울은 기도를 말한다.

18절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라고 말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는 17절에 있는 말씀을 수식한다. 기도로 우리는 구원의 투구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여섯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았다. 기도는 일곱번째로 생각될 수 있다. 기도는 우리가 다른 항목들을 적용하는 수단이다.

18절에 있는 “모든 기도와 간구로”라는 수식어는 14절부터 17절에 나온 전신 갑주의 여섯 항목과 관계가 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우리는 진리의 허리띠를 메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굳건한 기초로 신을 신는다. 더욱이, 기도로 우리는 믿음의 방패를 취하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취한다. 우리가 갑주를 입거나 갑주의 어느 것을 취할 때 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 없이 하나님의 갑주의 어느 부분도 사용할 수 없고 사용하려 해서도 않된다. 기도는 하나님의 갑주를 적용하는 유일한 길이다. 기도로서 갑주가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유효하다. 예를 들어, 구원의 투구를 갖고 있지만 기도가 이 투구가 유효하고 우세하게 한다. 그러므로, 기도는 중요하고 절대 필요하다.

(위트니스 리, 에베소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547-572)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는 것은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올 때 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눈을 사용하여 읽거나 생각을 사용하여 이해해서는 않된다. 내가 나의 체험으로부터 간증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눈과 생각으로만 성경을 접하면 성경은 단지 우리에게 죽은 글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성경 읽기는 기도와 함께 연합되어야 한다. 이것이 기도로 말씀읽기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 1절을 기도로 읽으면 우리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태초에,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태초에. 오, 하나님이 태초에 계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이 시작이시며 창시자이십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산 호흡이신 그 영이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적셔지고 영양분을 공급받고 신선해지고 빛비춤을 받는다. 죽은 글자의 책에서 멀리 떨어져 성경은 우리의 체험안에서 영양분을 공급하는 그 영이 된다.

에베소서 6장 17절과 18절에서 바울은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도록 확실히 명했다. 기도로 말씀 읽기를 반대하는 어떤 이들은 이 구절들을 이렇게 적용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헬라어 본문에 따르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혹은 기도를 통해 받아야 한다고 말해야만 한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고 하며 또한 말씀을 기도로 받으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기도로 말씀읽기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말씀을 읽어야 하고 기도로 받아야 한다. 수 세기 동안 많은 성도들이 이 원칙안에서 실행해 왔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우리가 기도와 같이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을 기도와 같이 읽는 것은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이다. 주님의 많은 백성들이 이러한 용어를 모르지만 기도로 말씀 읽기를 실행해 왔다. 말씀앞에 나아와 즉각적으로 말씀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놓고 기도했다. 여러분이 기도로 말씀 읽기에 대해 듣기 전에도 요한복음 3장 16절을 기도로 읽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를 읽고는 “오 하나님, 세상을 사랑해 주셔 감사합니다. 아버지, 나를 사랑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그처럼 사랑하서 당신의 아들을 날 위해 주셨군요.”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이것이 기도로 말씀 읽기이다.

(위트니스 리, 빌립보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309-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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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영양 공급으로 받는것에 관한 인용문

성경을 읽을 때 우리의 생각을 사용해 말씀과 성경 용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참고 문헌들과 색인 사전을 갖고 한 단어를 몇 시간 동안이나 연구할 수도 있다. 내 체험으로 부터 나는 그러한 연구가 혼을 지치게 한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다. 가끔 이것은 영을 억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말씀의 살아 있는 기능을 체험하고 누리는 것일때는 유용하다. 한면에서 성경을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또 다른 면에서 연구하는 겆을 잊고 우리의 영을 사용해 말씀을 기도로 읽고 말씀을 놓고 기도하며 말씀안에서 말씀을 통해 주님을 접촉하기를 구해야 한다. 말씀으로 기도해 주님을 접촉한다면 말씀에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럴때 말씀은 죽은 글자들이 아니며 우리의 영을 사용함으로 우리는 말씀안에 계신 살아계시는 분을 만질 것이다.

내가 성도들에게 말씀을 사역하기 전에 나는 이런 방식으로 주님을 접촉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의 어느 것도 나눌 것이 없다. 말씀을 연구함으로 메세지를 준비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주님안에서 호흡하고 기도하고 찬미하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주님께 기도할께 언어나 문법이나 작문을 관심하지 않는다. 내 유일한 갈망은 주님께 말을 해서 살아 있는 방식으로 그분을 접촉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기도를 작문하는 것을 관심한다면 우리의 영은 약화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작문하는 것을 잊고 우리의 영을 사용해 기도한다면 살아계신 분을 접촉할 것이다.

우리는 영양 공급과 원기회복을 위해 계속해서 말씀앞에 나와야 한다. 이렇게 성경에 접하는 것은 말씀을 먹는 것에 관한 찬송에 잘 나타나 있다.

주여 내 영과 맘 목마르고
배고파 주앞에 나왔으니
당신 자신을 공급하소서
주만이 내 능력 생명 공급

날 먹이소서 먹이소서
내 배고픔을 채워주고
목마름을 해결해 주소서
기쁨얻도록 먹이소서

찬송가 586장

이 찬송에서 나타난 영으로 성경에 나아올때 우리는 영양 공급을 받고 원기가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때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말씀앞에 나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기도도 하지 않고 주님을 접촉하기를 열망하지도 않는다. 대신, 눈으로 성경을 읽고 생각으로 이해하려 한다. 우리에게는 주님을 접촉할 마음도 없고 영도 없다. 그런 경우에는 말씀을 더 읽을 수록 더 지치게 된다. 우리는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영을 사용해야 하며 주님을 접촉하기를 열망해야 한다. 시편 119편은 그러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로인해 시편기자들에게 율법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자신을 접촉하는 그의 방법은 그의 친밀한 정서와 깊은 열망의 표현으로 그의 온 존재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가 말씀을 읽을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간절히 그분을 구했다.

(위트니스 리, 출애굽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679-680)


그리스도는 우리의 성장의 모든 요소이시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러한 모든 항목들을 받고 누릴 수 있는가? 먼저,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우리의 지식을 증가시키는 책이 아니다. 성경이 가르침의 책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우리의 지적 지식을 위한 책이 아니라 가르침을 통해 우리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는 책이다. 성경은 하늘에 속한 영적이고 비밀스러운 책이다. 상징으로 가득하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무교병이고(고전 5:8) 하나님의 어린양이고(요1:29) 생수(요4:10, 7:38-39)라고 말한다. 이 모든 상징들은 영적 실제를 말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반드시 주님 앞에 나와 그분의 말씀을 음식으로 취하는 고요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단지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읽은 것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반드시 말씀으로 돌이켜 기도안으로 읽어야 한다. 이러한 종류의 기도로 말씀 읽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읽은 말씀을 성령 안으로 가져오고 말씀은 영이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받는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받은 말씀은 그 영이 된다. 말씀과 그 영은 하나이다.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 이 말씀은 우리 안에서 그 영이 된다. 우리가 다른이들에게 말 해낼때 다시 한 번 말씀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이 말씀을 받을 때 또 다시 그들안에서 그 영이 된다. 이로 인해 주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생명의 공급이고 또한 생명의 분배이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존재가 영과 생명이신 말씀이신것에 기초하여(요6:63) 생명의 떡이시다. 우리 믿는이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을 때 우리는 영안에서 그리스도 자신을 받고 누린다. 성경을 읽으며 주님의 말씀을 받음과 기도안에서 주님의 영을 접촉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고 누린다(엡6:17-18a).

매일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는 것 처럼 매일 정해진 시간에 주님께 나와(참조, 시편55:17) 잔치하고 그분의 말씀과 영을 통해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한다. 삼 일 동안 먹고 다음 삼일 동안 굶는 것은 건강한 것이 아니다. 모든 건강한 사람들은 정해진 때에 먹고 정해진 양을 먹는다. 그들은 자주 먹지만 적당히 먹는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매일의 만나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음식이시다(요6:31-35, 48-51). 그리스도를 음식으로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간은 아침 부흥 할 때 이다(시119:147-148, 143:8, 애3:22-26). 우리는 매일 매일 이십분에서 삼십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 말씀을 세 구절에서 다섯 구절 정도 기도로 읽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먹고 마시고 누리는 것이다. 말씀은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누릴때 우리는 하나님을 먹고 마시고 누리고 하나님과 동화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과 넘치는 분배를 받는다.

위에 언급한 것 뿐 아니라 아침 휴식때나 점심 시간이나 오후 휴식때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 주님의 말씀을 꺼내 이런 방식으로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누리고 받는 자들이 될 것이며 우리의 영적 생활은 확실히 건강하고 살아 있을 것이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과 분배, 영문판 p.32-33)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읽는 것과 기도가 연합해야 한다. 우리의 눈과 생각을 사용할 때 또한 영을 사용해 그 영을 접촉해야 한다. 그러면 말씀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의 체험안에서 그 영의 풍성한 공급이 될 것이다.

시편 133편을 성경을 분석하는 것과 기도로 말씀읽기를 통해 성경에 있는 영양분을 누리는것의 차이를 보겠다. 개인 기도 시간에 어떤 그리스도인은 시편 133편을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보배로운 기름과 수염과 옷깃과 이슬과 헬몬산에 대해 분석하고 질문할수 있다. 풍성한 공급을 누리는 대신에 수 많은 답없는 질문들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편 133편을 기도로 읽는 다면 우리는 생명의 길 안에서 이 분깃을 취할 것이다. 우리가 기도로 읽을 때 “보라, 아멘,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아멘”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취할 때,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영을 우리의 내적 존재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로 말씀 읽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영을 사용해 말씀에 있는 영적 영양분을 받는다. 이러한 영양분으로 우리는 생명 안에서 자란다. 우리는 믿음의 말씀과 건강한 가르침으로 영양 공급을 받는다. 우리가 십분 정도만 투자해 말씀을 기도로 읽으면 우리는 영양분을 받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의 여러 요소들을 체험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 빌립보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319-320)


하나님의 말씀안에 있는 그 영과 생명을 먹고 마시고 호흡하기위해 기도로 말씀을 읽는 문제는 성경 말씀에 나와있다. 그러므로, 기도로 말씀 읽기는 미신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도로 읽을 때 글자 안에 있는 말씀은 주님 자신이신 영과 생명이 된다. 기도로 말씀 읽는 것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의 검”을 받는 것이다(엡6:17-18). 우리가 기도로 말씀 읽기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마다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그 영과 생명을 먹고 마시고 호흡하는 것이다. 구약의 성도인 예레미야 조차도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라고 말했다(렘15:16). 하나님의 말씀은 먹을수 있으므로 우리의 음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만 한다(벧전2:2). 히브리서 5장 12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두 종류라고 한다. 어린 아이들이 먹는 젖과 성숙한 자들이 먹는 단단한 음식이다.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하나님의 호흡하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호흡해 들일때 우리는 하나님이 호흡해 내신 것을 호흡하며 그분을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기도로 말씀 읽기는 먹고 마시고 호흡하는 것이 분명하며 우리가 더욱 그것을 실행 할 수록 더 좋다. 우리가 조금 먹고 조금 마시고 조금 호흡한다면 시간이 지날 수록 우리는 깨끗게 될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글자와 역사적 사건과 사람들과 사물들을 넘어서서 생명의 계시를 얻게 될 것이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케 앎, 영문판 p.24)


골로새서 3장 16절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고 명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려면, 우리는 모든 기도로 말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성경에 따르면, 말씀을 받는 최고의 방법은 말씀을 기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빌립보서 3장 17절로 예를 들어 보자.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이 구절을 읽고 여러분이 영감을 받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러분이 기도할 때만 이 말씀이 여러분 안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구절을 기도로 취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우리가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 말씀은 우리의 입안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내적 존재 안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말씀을 기도로 받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기도할때 말씀은 우리의 존재의 매우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수년간 체험한 노인으로서 나는 말씀을 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모든 기도라는 것을 증거할 수 있다. 말씀을 기도함으로 우리는 말씀 안에 있는 생수를 마신다. 그런 후 이 생수는 우리의 내적 존재를 채우고 우리가 영양분을 받아 건강하게 되도록 한다. 디모데 전서 6장 3절과 디모데 후서 1장 13절에서 바울은 “건강한 말씀”(한국어 성경: 바른 말, 원문: healthy words")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우리가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 말씀은 우리에게 건강한 말씀이 된다. 이러한 건강한 말씀으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체험한다.

(위트니스 리,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비결, 영문판 p.21)


성경을 이해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성경의 말씀을 먹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레미야 15장 16절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마태복음 4장 4절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은 단지 읽고 연구하기에 좋은 책이 아니라 특별히 먹는데 좋다. 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말씀을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로 읽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그 영의 풍성한 공급을 누리기 원한다면 우리는 말씀을 먹어야 한다.

(위트니스 리, 빌립보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 318)

(Back - 기도로 말씀읽기에 관해 위트니스리를 인용함)


간증을 인용함

수 세기에 걸친 많은 믿는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는 실행을 했었다. 비록 그들이 기도로 말씀 읽기라는 용어를 몰랐지만 그들의 체험 속에는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했던 사람들 중 하나는 조지 윗필드로 그는 요한 웨슬레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다. 조지 윗필드의 실행은 무릎 꿇고 헬라어 신약 성경을 기도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의 능력과 영성의 비결이었다. 조지 윗필드는 생명의 말씀을 기도로 읽었다. 말씀을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영을 사용해 말씀에 불이 붙게 하는 것이다[성냥을 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오십 년 이상 성경을 읽고 추구해 왔다. 내가 젊었을 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고 성경을 철저히 알기를 열망했다. 그러나, 나는 오직 눈과 생각으로 성경 읽는것만 알았다. 그럴 때 누군가가 나에게 성경을 읽지만 말고 묵상하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시간을 들여 말씀을 숙고하고 상고하고 그 안에 거하기를 시작했다. 이것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나는 또한 조지 뮬러의 자서전으로 도움을 받았다. 뮬러에 따르면, 우리는 단지 성경을 읽고 묵상할 뿐만이 아니라 성경을 놓고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자서전에서 뮬러는 우리가 말씀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어느 정도 읽고 기도해야 한다고는 말했다. 예를 들어, 만약 우리가 사랑에 관한 구절을 읽는다면, 우리는 사랑에 관한 기도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말씀에서 회개에 대하여 읽을때 회개에 대해 기도할 것이다. 한 구절 읽고 바로 기도하는 이러한 실행은 기도로 말씀 읽기와 비슷하다. 조지 뮬러의 자서전은 매우 도움이 되었고 나는 그의 실행대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종종 나는 성경의 순수한 말씀을 기도해 어떤 구절은 주님을 향한 내 기도가 되게 한다. 사실상 나는 기도로 말씀을 읽고 있었다.

(위트니스 리, 빌립보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397-98)


나는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이 단순하게 읽는 것보다 더 좋고 높고 풍성하고 충만하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다. 매일 매일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 적셔지고 채워지고 만족하고 살아나고 강건케 되고 목양받고 소중히 품음을 받는다. 더욱이, 기도로 말씀 읽기로 나는 거룩케 되고 순수해 지고 변화받는다. 비록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로 말씀 읽기를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 달콤하고 너무 좋다. 예를 들어 요한 복음 1장 1절로 간단하게 기도한다면 나는 목양받고 채워지고 주님안에서 만족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 에베소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817-818)


[먼저], 성경을 피고 기도로 읽어 보라. 눈을 감을 필요가 없다. 기도하면서 말씀을 보라. 성경 육십 육권중 어디에서도 기도할 때 눈을 감으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라고 말한 구절은 있다(요17:1). 기도하는 동안 하늘을 바라 보았다! 우리는 교리적인 방식으로 논쟁하지는 않겠지만 기도할 때 눈을 감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단지 “태초에...”라고 씌여진 종이를 보라. 그런 다음에 말씀을 보고 깊은 곳으로부터 “오 주여, ‘태초에’, 주여, 당신을 찬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 제가 말씀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말씀이 계셨습니다. 주여 당신을 찬양합니다. ‘태초에!’할렐루야! ‘태초에!’ 오 주여,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단순히 이러한 방식으로 기도해 보라. 아마도 다른 구절로도 기도할 것이다. “더 이상 정죄함이 없나니! 오 주여, ‘더 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 오 주여, ‘지금 정죄함이 없습니다.’ 아멘. ‘지금’ 오 주여. ‘지금’. 아멘! ‘더 이상 정죄함이 없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정죄함이 없나니’” 등등이다.

우리가 말씀을 기도로 읽는 동안 문장을 작문하거나 기도를 창작해 낼 필요가 없다. 단지 말씀을 기도로 읽으라. 성경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기도하자. 결국, 여러분은 성경 전체가 기도의 책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단지 “주기도문”만이 기도가 아니라 성경 전체가 기도이다. 성경의 어느 쪽, 어느 줄, 어느 말씀을 펴 말씀의 그 분깃을 기도해 보라. 주님의 임재안에서 삼십 분 동안 이렇게 계속 기도로 읽을때 어떤 빛비춤과 적심과 영양분과 신선함과 강건함과 만족을 얻는지 보라. 이 삼십 분 동안 하루를 지탱해 줄 영적 아침 식사를 먹을 것이다!

비록 여러분이 어떤 단락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여러분은 영양 공급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그분의 말씀안에 하나님의 어떤 것이 진정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바로 그 호흡이다. (디모데 후서 3장 16절은 헬라어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호흡하신것”이다.)

성경을 오직 배우려고만 하지 말라. 우리는 반드시 이것이 생명의 책이지 지식의 책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이 책은 살아계신 그 영의 신성한 체현이며 그분은 생명이시다. 합당한 방법은 단지 연구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을 사용해 기도로 읽음으로 말씀을 접촉하는 것이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것이 옳은 길임을 증명해 왔다. 성경에 나아오는 방법은 그들의 삶을 혁명시켰다. 만일 여러분이 오일 동안 아침마다 실행한다면 여러분 또한 바뀔 것이다. 여러분의 성경에 대한 관념 전체가 급진적으로 바뀔 것이다. 아마 처음에는 잘 않될지 모르지만 여러분은 살아계신 그 영을 접촉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 영문판 p.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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