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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2000년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에서 출판하고 위트니스 리가 쓴 영 안에서 주님과 상호 거하는 삶의 6장입니다.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말씀을 기도로 읽음

성경: 마태복음 4장 4절, 디모데 후서 3장 15-17절, 요한복음 6장 63절, 에베소서 6장 17-18上절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해 갖고 계신 기본적인 갈망은, 그분 자신을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과 누림으로서 우리 안으로 역사하여 우리를 충만케 하고 만족케 함으로써 그분이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서 살아내고 우리를 통하여 표현되게 하는 것임을 계시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역사 하여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게 하려면 두 가지 수단이 필요하다. 우리의 하나님은 위대하고 거룩하시며 또한 매우 비밀스러우시다. 우리 편에서, 우리는 매일 그분을 접촉하고 그분을 우리의 생명과 생명공급과 누림으로서 우리 안으로 받아들인다. 한편, 하나님 편에서, 그분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역사해 넣으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로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영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우리의 생명과 생명공급으로서 우리 안으로 역사해 넣으신다는 것을 계시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탁월한 은사를 주셨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영이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나큰 선물로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기록되었고 견고하게 우리의 손안에 놓여있다. 우리는 그것을 매일 읽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겨보고, 살피고, 탐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관해 우리의 생각으로 마음대로 상상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의 사상은 성경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성경의 말씀에 고정시키고 성경의 말씀을 소화하고 성경의 말씀을 씹어 먹어야 한다. 최소한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접촉하고 그분의 표현된 갈망을 만졌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예시할 수 있다. 오늘 아침에 당신은 나를 접촉하고 싶어하고 나 또한 당신과 접촉을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않고, 당신은 거기에 조용히 앉아 있고, 나는 여기에 그냥 서 있을 수도 있다. 만일 한 시간 반의 침묵이 지난 후 서로 헤어진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서 어떤 것도 당신에게 흘러가지 않았고, 당신에게서 어떤 것도 나에게로 흘러오지 않았다. 우리는 바로 말을 통해서 서로 접촉하고 서로 안으로 흘러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때로 우리는 눈을 사용하여 우리의 느낌들을 전달하기도 한다. 당신은 나를 보고, 내가 당신을 볼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 당신이 내가 웃는 것을 볼 때 당신은 내가 기쁘다는 것을 알고, 내가 당신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때 나는 당신이 슬프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눈을 통해 아무리 많은 것을 전달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참된 상황을 모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말을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당신에게, “왜 눈물을 흘리십니까? 저에게 얘기 좀 해 주세요”라고 물을 필요가 있다. 당신이 나에게 말을 한다면 당신의 이야기가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또 나는 당신의 관점을 알게 된다. 당신의 해명과 설명이 하나의 계시이다. 당신이 말을 한다면 나는 당신의 이야기의 면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당신이 아마도 오늘 아침에 아버지한테서 그릇되게 꾸지람을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시에 나는 또 왜 당신이 길거리에서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가를 이해한다. 오히려 당신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이고 당신을 동정했기 때문임을 당신이 알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당신은 당신의 느낌들을 쏟아놓을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하나의 계시이다. 당신은 여전히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비록 내가 당신도 나의 견해를 갖도록 당신을 위안하는 한 마디 말을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당신 안으로 들어갈 길이 없다.

하나님의 영

하나님께서 다만 그분의 말씀만 우리에게 주셨다면 우리는 그분의 의도, 기껏해야 그분의 계시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분이 직접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두 번째 단계를 취하셔야 한다. 즉, 그분은 반드시 그 영이 되셔야 한다. 나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성육신 되셨다는 것을 거듭 거듭 말했다. 그분은 혈과 육의 몸을 입으신 다음에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고, 또 그분의 보혈을 흘려 우리를 우리의 죄들에서 구속하였다. 구속의 역사를 성취하신 후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고린도 전서 15장 45절 하반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죄들을 자백하고, 그분을 우리의 구주로서 영접한다면 그분은 생명 주는 영으로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비밀스럽다.

헬라어에서 “”이라는 단어는 “뉴마(pneuma)”로서 이것은 “호흡”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 후에 주 예수님은 그 영(the Spirit)이 되셨는데, 이 영(Spirit)은 호흡이다. 이 점에 있어서 중국어는 매우 의미 깊다. 사람이 죽을 때 우리는 그가 죽었다고 말하기를 싫어하고 그가 숨을 거두었다고, 즉 그가 그의 마지막 숨을 쉬었다고 말한다. 숨을 거두는 것은 더 이상 호흡하지 않는 것이고, 더 이상 호흡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생명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 63절은 “생명을 주는 것은 그 영이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생명은 그 영(the Spirit)과 연관이 있다. 생명의 영은 생명의 호흡이다. 호흡이 영이고, 영이 호흡이다. 우리의 주 예수님은 사람이 되셔서 우리의 구주가 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분은 죽고 부활하셨다. 또 그분은 부활 안에서 생명의 영 곧 생명의 호흡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63下). 여기서 영과 생명이 다시 함께 놓여졌다. 영이 생명이다. 이것은 영과 호흡과 생명이 모두 하나임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에게 호흡이 없다면 생명을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신체적 몸이 이것을 예시한다. 때때로 우리가 아플 때 숨이 차는 것을 느낄 것이다. 병원에서 호흡이 가쁜 환자들은 산소를 필요로 한다. 또 다른 예시는 자동차의 타이어에 충분한 공기가 없을 때 그것은 주유소로 가서 공기를 주입 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이 숨가쁘게 될 때 우리는 병원으로 가서 “공기를 주입”받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말씀과 영이심

우리는 우리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우리 안으로 그 호흡을 불어넣으셨음을 보아야 한다. 요한복음은 21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첫 장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고 말한다. 말씀은 곧 주님 자신이다. 주님은 말씀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표면상으로 성경은 이야기와 역사와 징계와 경고와 죄의 자각과 가르침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 당신은 이러한 것들만 얻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얻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이다. 만일 당신이 성경을 읽으면서 그리스도를 얻지 못한다면 당신은 헛되이 읽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성경을 읽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다. 요한복음은 먼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말씀이심을 보여준다. 그 다음 그것은 말씀이신 이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셨고, 또 이 땅에서 삼십 삼 년 반의 인생을 사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19장은 그분이 십자가에 계셨을 때 피와 물이 그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왔다고 말한다(34절). 피는 구속을 뜻하고,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한다. 물은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생수인 그 영을 뜻한다.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그분의 피가 상징하는 바 구속을 성취하셨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생수이신 그 영을 흘러내셨다.

그분은 이것들을 성취하신 후 20장에서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날 저녁에 그분은 제자들에게 돌아오셔서 그들 가운데 서 계셨다. 이 때 그분의 돌아오심은 이전과 달랐다. 이전에, 즉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그분은 육체 안에 계셨다. 이제 그분의 부활 후에 그분은 영이시다. 그분은 그 영으로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과 함께 만나셨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핍박이 두려워 문과 창문을 꼭 닫았었다. 주 예수님은 심지어 문을 두드리지 않으셨고, 또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만 돌연히 주님께서 그들 한 가운데 서 계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혹하였고 그것이 유령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부활한 몸을 갖고 오셨으며, 제자들 안으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주님이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라고 말함으로써 시작하고, 그 끝에서는 주님이 그 호흡 곧 그 영이시라고 말한다. 1장에서 주님은 말씀이시고, 반면 20장에서 그분은 그 영이시다. 먼저는 말씀이고, 그 다음은 그 영이며, 이 책의 중간에는 요한복음 6장 63절이 있다. 이 구절은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니...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의 시작에 말씀이 있고, 그 끝에 그 영이 있으며, 그 사이에 말씀과 영이 있다. 생명을 주는 것은 그 영, 곧 사람으로 생명을 갖게 하는 영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들은 영이요 생명이다. 만일 말씀만 있다면 다만 의도의 표현만 있을 것이다. 만일 영이 없다면 주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 감사하자. 이제 우리에게는 말씀과 그 영이 있다.

이 셋-주님, 말씀, 그 영-은 하나이다. 주님은 말씀이고, 또 한 그 영이시다. 말씀이 그 영이고, 그 영이 주님이다, 그러므로 이 셋은 바로 하나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은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라고 말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말씀들이 그 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영이 말씀이라는 것은 믿기를 어려워한다. 에베소서 6장 17절은 “구원의 투구와 그 영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인 그 영을 가지라”고 말한다. 말씀은 그 영이고, 그 영은 말씀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은 말씀이 그 영이라고 말하고, 반면 에베소서 6장 17절은 그 영이 말씀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따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다”. 따라서 주님은 말씀이시다. 그 다음 20장 22절에서 주님은 제자들 가운데 오셔서 그들 안으로 호흡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다. 주님이 불어넣으신 호흡은 성령이었다. 이것은 주님이 그 영(that Spirit)이심을 증명한다. 더욱이 성경에서 주님이 그 영이심을 말하는 또 다른 두 구절이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 하반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말하고,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주는 그 영이시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세 구절, 요한복음 6장 63절, 에베소서 6장 17절,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우리에게 주님과 말씀과 그 영이 모두 하나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주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으로 역사 하심이다.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취함

위에서 언급된 구절들에 따르면 우리는 주님이 하나님이고, 말씀이 하나님이고, 그 영이 하나님임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주님과 말씀과 그 영이 하나이다. 주님이신 이 하나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려면 그분은 말씀과 그 영이 되셔야 한다. 에베소서 6장 18절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라고 말한다. 기도와 간구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는 도구들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머니께서 식탁에 마련하신 식사에 비유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다만 당신이 와서 그것을 취하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식사를 취하고 받아들이는 최선의 길은 그것을 먹는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바라보거나 그 음식을 연구하려 오지 않고 그 음식을 먹으러 온다. 많은 때 부모들은 거스르는 개구쟁이 아이가 식탁에 와서 음식을 먹지 않고 그 음식을 쳐다보기만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더욱이 음식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영양학자들 가운데 잘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오직 한 권이지만 그 독자들은 그것을 서로 다르게 읽는다. 후쓰 박사(Dr. Hu Shih)는 성경을 연구 조사하는 방식으로 읽는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다만 품격 높은 문학작품으로서 본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읽을 때 먹으러 오지 않고 다만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나는 우리 모두가 성경은 우리가 단지 연구 조사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것은 마치 식사가 연구 조사의 대상이 아니라 먹기 위한 것임과 같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에서 바울은 그 영을 언급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한다. 그는 당신이 그 영의 검, 곧 그 영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할 것을 말한다. 여기서 그는 그 영과 말씀을 하나로서 말한다. 대부분의 성경 독자들은 그 영의 검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으로 이해한다. 젊었을 때 나도 이런 식으로 가르침 받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영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다. 실제상으로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그 영이 아니라면 그것은 검이 아니라 다만 말씀이나 교리이고 흰 종이 위의 흑백문자일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그 영이어야 하고, 또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럴 때 그것이 검이 될 수 있다.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고 받아들였다. 그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기도할 뿐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간구 했다. 기도는 일반적이지만, 반면 간구는 특정하다. 그뿐 아니라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기도했다. “모든”은 상당히 많은 방법들을 포함한다. 당신은 소리를 내어 기도하거나 나지막하게 기도할 수 있다. 당신은 빨리 기도하거나 느리게 기도할 수 있다. 당신은 한가지 방식뿐 아니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즉 혼자서, 배우자와 함께, 한 무리와 함께, 집회 가운데서 기도로 말씀을 읽을 수 있다. 바울은 우리가 그 영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기도와 간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모든 기도로써 기도하고 간구해야 할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갈 때 그것을 바라보거나 연구하지만 말고 그것을 취해서 우리 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다. 당신이 다만 이 구절을 보고 읽기만 한다면, 심지어 그것을 열 번 읽더라도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 나의 두 손자가 나를 보러 왔는데, 그들의 모친이 그들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을 영어와 중국어로 암송하도록 가르쳤었다. 그들은 매우 재빨리 암송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은 후 나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다. “얘들아, 너희들이 둔하구나. 너희들은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구나.” 그들은 그것을 읽을 뿐 아니라 암기까지 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6절은 여전히 그들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이 구절을 거의 60년 동안 받아들였다. 나의 믿음을 강화시켜 내가 구원받았음을 깨닫도록 한 것은 바로 이 구절, 요한복음 3장 16절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이 구절을 다만 읽고 연구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상 나는 기도로 읽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그런 용어를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그것을 기도로 읽었다.

나는 아직도 그 날을 기억한다. 나는 나의 구원에 관하여 여전히 그 다지 분명치 않았는데,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처음에 나는 다만 그것을 읽기만 하다가 점차적으로 읽는데서 받아들이는 데로 전환했다. 나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읽고, “오, 하나님,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기도했다. 그 다음 나는 다시 “오, 하나님,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저는 세상의 한 부분입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를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자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처음에 나는 그 구절을 원래의 낱말 그대로 읽었지만 결국 나는 그것을 취하기 시작했다. 한 번 내가 그것을 취하기 시작하자 나의 기도의 어조가 바뀌었고 발성이 변했다. 나는 “오, 하나님,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이 저를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의 독생자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당신 안으로 믿음으로써 저는 멸망치 않을 뿐 아니라 영생을 얻습니다.”

거의 60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장면을 매우 선명하게 기억한다. 나는 속에서 기뻤을 뿐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탄을 포함한 만물에 대하여, “나는 요한복음 3장 16절이 그렇게 말하므로 영생을 가졌다.”라고 선포할 만큼 확신으로 충만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것이다. 그 때 아무도 나에게 기도로 읽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또 몰랐지만 나는 그것을 저절로 기도로 읽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기도로 읽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복음을 전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기도로 읽기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을까요? 나는 당신과 함께 읽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함께 읽을 동안에 나는 그들이 기도로 읽도록 도와주었다. 이런 식으로 그들 중 일부가 이끌림을 받았다. 이것이 기도로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을 취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쉬고 우리는 들이마심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데, 그 실제는 그 영이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편에서 성경은 그분이 호흡을 내쉼이고 우리 편에서 그것은 들이마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호흡을 내 쉬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의 내쉼이다. 이날까지 이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호흡의 내쉼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다만 죽은 문자만을 읽고 하나님이 내쉬신 것을 들이마시지 않는다면 그 성경은 당신에게 죽은 문자일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그 호흡을 내쉰 것이고, 반면 우리의 기도는 들이마시는 것이다. 이 내쉼과 들이마심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들이마신다. 이것이 성경의 의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무리 그 호흡을 내쉬더라도 우리가 들이마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누림과 공급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이유이다.

성경의 말씀들은 하나님의 내쉼이지만 당신이 그것들을 기도로 바꿀 때 그것들은 당신의 들이마심이 된다. 전체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호흡의 내쉼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내쉰 것을 당신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것은 기록된 말씀을 기도함으로써 이다. 일단 당신이 성경의 말씀을 기도로 바꾸면 하나님의 호흡의 내쉼이 당신의 들이마심이 된다. 당신이 들이마시는 것은 영이고 생명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다. 주님의 말씀들이 우리에게 영이 될 때 그것들은 또한 생명이다.

주님께 감사하자. 우리의 연장한 형제 자매들 중 많은 이들이 성경을 사랑하고, 나 또한 성경을 사랑한다. 내가 성경을 58년간 읽어온 체험 가운데서 나는 하나의 비결을 배웠는데, 기도로 성경을 읽는 것이 가장 유익한 길이다. 당신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다만 평범한 방식으로 읽는다면, 이 읽음이 당신에게 유익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다만 당신에게 하늘과 땅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 곧 그것들의 근원을 알려주는 계시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지식이다. 당신은 그것으로부터 어떤 공급이나 양육을 얻지 못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주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다(4절).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이 성경이다. 마태복음 4장에서 주 예수님은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마귀의 세가지 유혹을 물리치셨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이라 하셨을 때 그분은 거룩한 말씀을 지칭하신 것이다. 성경 66권의 첫 구절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이것은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말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과 일치한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호흡해 내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호흡해 내쉰 것을 다만 읽고 이해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다만 지식과 계시와 교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우리를 무지에서 구원한다는 점에서 유익하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양육을 얻지 못한다. 어떻게 우리가 성경의 말씀으로부터 양육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 말씀들을 기도로 전환시킴으로써 가능하다. 이것이 기도로 읽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읽기와 전혀 다르다.

거룩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는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먹고 산다. 그러므로 성경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양식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6장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곧 생명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63절). 35절에서 주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라고 하셨다. 또 그분은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하셨다(57절). 그 때 그분은 그분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에 63절에서 이같이 말씀을 더하셨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므로 당신은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음식이 부엌에서 마련되어 식탁에 올려지는 것이 필요할 뿐 아니라 또한 당신이 그것을 먹으러 오는 것도 필요하다. 당신이 먹지 않는다면 영양공급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반드시 한 가지를 배워야 한다. 살아 있고 강하고 선량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이 한 가지, 즉 생명의 말씀을 먹기를 배워야 한다. 오늘날 온 세상이 영양식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었다. 옛 중국 속담에 사람이 70세에 이르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이제 나는 거의 80세에 이르렀다. 이것을 인해 나는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감사한다. 나의 비결은 식사에 있다. 나는 매일 합당하게 먹는다. 그 결과 나는 젊은 여러분들만큼 힘이 있다.

그리스도를 먹는 최상의 길은 기도로 읽는 것임

그러므로 우리의 결론은 선량하고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매일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강하고 건강하려면 먹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러나 무작정 먹지는 말라. 당신은 반드시 합당하게 먹어야 하고, 또 제 시간에 맞춰 먹어야 한다. 나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이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바쁘다는 것을 안다. 실상 각 사람이 바쁘다. 아무도 한가히 앉아 있지 않다. 사탄은 어느 누구도 한가히 있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당신이 학교에 간다거나 일을 하러 간다고 언급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당신은 이것들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온종일 바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일로 당신의 변명을 삼지 말라. 도리어 “바쁘다”는 말을 당신의 생활에서 제거해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나는 여러분들이 전화로 한담하는 시간을 구원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말씀을 기도로 읽고 주님을 먹을 시간을 많이 구속할 것이다. 실제적으로 이것은 매우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루에 반시간이라면 매우 훌륭하다.

우리는 식사를 규칙적으로 합당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에게는 하루에 세 번-아침, 점심, 저녁-의 식사가 있고 나는 그 일정을 확고하게 고수한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주님의 말씀을 먹으러 올 때 명확한 일정을 잡아 놓아야 한다. 당신이 기쁘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먹지 않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당신은 기쁠 때도 먹고 그렇지 않을 때도 먹어야 한다. 더 나아가 먹는 것에 선택적이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성경 전체를 읽어야 한다. 최선의 길은 매일 구약에서 일정 부분을, 또 신약에서 일정부분을 읽는 것이다. 구약의 창세기의 첫 장부터 시작하고 신약의 마태복음의 첫 장부터 시작하라. 순종적인 자녀는 그들의 어머니가 차려주는 데로 잘 먹고 건강하게 자란다. 그러나 먹는 것에 있어서 선택적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나는 당신이 나의 이 작은 권고의 말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나는 나의 수십 년간의 체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신학이나 성경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의 체험으로부터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이 두 위대한 수단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과 그분의 호흡의 내쉼으로써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분은 내 쉬시고 우리는 들이마셔야 한다.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들이마신다. 가장 확실한 최상의 길은 주님의 말씀이 당신의 기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기도하는 방법에 관해서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다. 전체 성경이 당신의 기도책이다. 한 문장이나 한 구절을 읽고 이 말씀들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다. 이것이 최상의 기도이다.

당신은 기도할 때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지나치게 유동적이지 말아야 한다. 먼저 당신은 당신의 영을 사용해야 한다. 당신의 영으로써 주님을 접촉하고 당신 자신을 그분의 보혈로써 씻어 주시기를 구하라. 당신이 당신의 영으로써 주님을 접촉할 때마다 그분의 피가 당신을 정결케 할 필요가 있음을 느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득죄했음을 못 느낄 수도 있지만 당신 자신이 옛 창조와 육체와 자아 안에 있기 때문에 당신은 여전히 오염되어 있다. 심지어 우리가 득죄 하지 않았더라도, 심지어 우리가 그릇 행하지 않고 그릇된 생각을 갖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육체이다. 우리가 육체이므로 우리는 피의 씻음을 필요로 한다. 옛 창조에 속한 자들로서 우리는 깨끗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당신이 주님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그분을 접촉하러 올 때마다 먼저, “주님, 저를 당신의 보혈로써 씻어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구약의 예표들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마다 반드시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려야 함을 계시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그분을 당신의 속죄제와 속건제로 취함으로써 그분의 보혈로써 당신을 정결케 해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이렇게 정결케 되었다면 당신은 당신의 영 안에서 주님의 영에 의해 소생될 것이다. 당신의 영이 소생될 때 당신은 자신의 사상이나 생각을 다라 말하지 않고 영을 따라 말하기를 배워야 한다. 이것은 당신이 생각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당신이 영을 사용하면 할수록 생각은 더 분명해지고 사상은 더 정결하고 현명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영으로부터 시작하라. 즉, 당신의 존재 깊은 속에서부터 주님을 접촉하라. 그분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기도하라. 다만 읽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읽어라. 이 때 지나치게 독창적이거나 색다르게 할 필요가 없고, 또한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낼 필요도 없다. 당신이 참으로 고무된다면, “아멘, 오 주여, 이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제가 당신을 얼마나 찬양하는지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기도로 읽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당신의 온 존재안에 새겨지게 하고 공급이 되게 할 것이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했다(딤후3:16). 우리가 이런 식으로 기도로 말씀 읽기를 하고 주님의 말씀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일 때 그 말씀들 중 어떤 부분은 우리를 책망하고, 또 어떤 부분은 우리를 가르치며, 또 어떤 부분은 우리를 바로잡고, 또 다시 어떤 부분은 우리를 의로 교육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는 온전케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완전케 될 것이다. 이것은 공자와 맹자의 책들을 읽고 그들의 윤리와 도덕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다. 이런 식으로 우리 안에 있는 그분의 말씀은 우리에게 공급이 될 뿐 아니라 또한 우리 속에서부터 우리를 책망하고 가르친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을 읽는 합당한 길이다. 부디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힘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것을 매일 실행케 하시기를 원한다.

(Back - 기도로 말씀읽기에 관해 위트니스 리를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