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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안에서의 성장을 위해 기도로 말씀 먹기
그리스도인의 기도로 말씀 읽기에 대한 간증
  기도로 말씀읽기에 관해 위트니스 리를 인용함

기도로 말씀읽기에 관해 위트니스리를 인용함

다음은 1991년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에서 출판한 위트니스 리의 기도로 말씀 읽기 소책자입니다.

말씀을 기도로 읽기

아기가 태어났을 때 가장 시급한 필요는 영양 공급을 위해 젖을 먹는 것이다. 영양 공급 없이 아이는 합당하게 자랄 수 없고 곧 매우 약해져 결국에는 죽을 것이다.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난 후에 우리의 가장 시급한 필요 역시 주님을 우리의 신령한 젖과 영양 공급으로서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 영양 공급 없이는 우리가 합당하게 자랄 길이 없고 곧 영적으로 죽을 것이다.

복음서에서 주 예수님은 그분 자신을 먹고 마시는 잔치로 우리에게 주셨다. 요한복음 4장에서 주님은 그분이 우리가 마실 생수라고 말씀하셨다. 6장에서 보면 그분이 먹을 수 있는 생명의 떡이라고도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고린도전서 12장에는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했다. 우리는 그분을 마시고 그분을 먹고 그러므로 그분을 누리고 우리의 영적 영양 공급으로 그분을 받아들인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잔치로 주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고 우리의 모든 공급이 되심을 인해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이름이 위대한 “나는 이다”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는 나는 내 백성이 필요한 모든 것이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양식

베드로 전서 2장 2-3절에 가장 중요한 단락이 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이 구절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데 이는 주님을 어떻게 맛보는지에 대해 분명히 말해주기 때문입니다:“(말씀의)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맛본다면, 우리는 반드시 말씀의 젖을 우리 안으로 취해야 한다. 그런 다음 우리는 영적 성장을 위해 영양 공급을 받을 것이다. 성경에서 “맛보라”라고 말함을 인해 주님을 찬양한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에 대해 이 방면 저 방면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맛보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의 젖을 마실 때 우리는 사실상 주님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맛보는 길은 단순히 말씀의 젖을 마시는 것이다. 말씀은 단지 우리가 공부하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맛보는 것이다. 주님이 그분의 몸에 영양 공급하는 방법은 그분의 말씀이다. 만약 우리가 주님을 누리고 주님에 의해 영양 공급을 받을 갈망이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말씀 앞에 나와 주님을 맛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의 관념은 성경이 가르침과 같고 교리가 가득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알려는 의도를 가지고 말씀 앞에 나아온다. 우리 그리스도인 생활 전체에서 얼마나 많은 말씀을 음식으로 우리의 영안으로 취했는가? 우리는 매우 조금밖에 취하지 않았다고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 성경 앞에 나와서는 않된다. 성경은 지식의 나무가 아니라 생명 나무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의 나무로 취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오용하는 것인데 이는 고린도 후서 3장 6절에서 의문은 죽이는 것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의문의 책으로 취하지 말고 생명의 책으로 취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능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하는 것임을 안다. 비록 이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이 주된 기능은 아니다. 성경의 주된 기능은 하나님을 생명과 생명의 영양 공급으로 우리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단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단지 알거나 이해하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본질의 어떠한 것을 우리가 음식을 먹는 것처럼 취해야 한다. 그러면, 음식과 마찬가지로 이 실체는 우리의 바로 그 존재안으로 동화될 것이다.

디모데 전서 4장 6절은 우리가 “믿음의 말씀과...양육을 받으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 구절을 여러 번 읽어 보았지만 “양육(nourish, 영양 공급)”이란 말을 주의해 본 적이 있는가? 주님을 찬양한다! 사도 바울의 개념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음식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역시 하나님에 말씀에 관한 같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말씀을 단지 지식이라 생각지 말고 항상 우리를 양육하고 공급하는 음식으로 여겨야 한다.

디모데 전서 1장 10절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가르침”에 관한 것들을 말한다. 흠정역은 “건강한(healthy)"이란 단어 대신 “바른(sound)”가르침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생각에 바른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건강한 교리이다. 건강한(healthy)이란 헬라어는 영어의 위생, 건강법(hygiene)과 동일한 단어이다. 위생이나 건강법은 건강과 많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바른 말 이상의 것을 가져야 한다. 반드시 우리를 양육하고 공급하는 건강한 말씀을 가져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은 사례를 적어도 세 번은 언급한다. 첫째는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렘15:16上)라고 말한 예레미야이다. 먹는 것은 단지 무엇을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을 동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에 관한 두 번째 예는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고 에스겔서에 기록되어 있다(3:1-3). 그 후 계시록 10장에서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

예레미야는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라고 말했다(렘15:16上). 이것은 누림의 한 종류이다. 말씀을 먹으면 기쁨과 환희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림이다. 우리가 먹은 후 이 말씀은 우리의 바로 그 존재안으로 동화되어 우리 안에서 기쁨이 되고 우리 밖에서 환희가 된다. 다윗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했다(시119:103). 말씀은 참으로 누림이며 꿀보다 더 달고 더 좋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맛보고 먹고 누리고 소화하는 것임을 볼 수 있다.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 음식이라고도 말씀하셨다:“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것이라”(마4:4).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우리를 양육하는 영적 음식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 양식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

하나님의 말씀의 실체와 본질은 무엇인가? 그 답은 디모데 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이다(All Scripture is God-breathed)”, 에 있다. 흠정역은 “하나님의 감동(given by inspiration of God)"이라고 하지만, 원문의 뜻은 하나님의 호흡(God-breathed)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영이시며(요4:24) 그 영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임을 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탁자가 나무인 것처럼). 말씀이 하나님의 호흡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이시고 하나님이 호흡해 내신 모든 것은 영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 또는 본성은 영이다. 그 영은 하나님의 말씀의 바로 그 실체이다. 지금 우리는 왜 주 예수님께서 그분이 하신 말씀이 이요 생명이라(요6:63)하셨는지 알 수 있다. 계시나 사상이나 가르침은 결코 생명이 될 수 없으나 말씀은 영이기 때문에 생명이다. 이 책의 본성은 하나님 자신의 바로 그 본질이다. 우리가 이 책을 다룰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하고 그분을 대하는 것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기도로 말씀을 취함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 자신의 바로 그 본질임과 우리의 영적 누림과 영양 공급을 위한 것임을 보았기에 우리는 이제 반드시 말씀 앞에 나아오는 합당한 방법을 보아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반드시 에베소서 6장 17-18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한다:“...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 영이다. 18절에서 계속해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라고 말한다. 이 단락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떠한 방식으로 취해야 하겠는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한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로 말씀 읽기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반복해야만 한다.

기도로 말씀 읽는 방법

단순히 말씀을 들어 아침과 저녁에 몇 구절씩 기도로 읽어보자. 생각을 사용해 언변을 쥐어 짜낼 필요가 없고 읽은 것을 숙고할 필요가 없다. 단지 읽은 그 말 그대로 기도하면 된다. 각 장과 각 구절마다 살아있는 기도가 있다.

기도로 말씀 읽을 때 눈을 감을 필요가 없다. 기도할 때 눈을 말씀에 두라. 성경 66권 어디에서도 기도할 때 눈을 감아야 한다고 말하는 구절이 없지만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라 말했던 구절은 있다(요17:1). 그분은 기도하는 동안 하늘을 우러러 보셨다. 우리는 교리 적으로 논쟁하지 말고 기도할 때 눈을 감을 필요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생각의 눈을 감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기도로 읽을 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라고 말하는 인쇄된 종이를 보라. 그 다음에 눈을 말씀 위에 두고 깊은 속에서부터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아멘! ‘나는’ 오 주여, ‘나는 못 박혔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아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아니요.’ 아멘. ‘더 이상’ 아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 주여.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할렐루야! 아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네,’”라고 기도하자. 그리고 요한복음 10장 10절을 펴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를 읽어보자. 여전히 눈을 성경에 두고, “‘내가 온 것은.’ 아멘! ‘내가 온 것은.’ 할렐루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생명을 얻게 하고.’ 할렐루야! ‘생명.’ 아멘! ‘생명.’ 오 주여, ‘생명.’”

문장을 작문하거나 기도를 창작해 낼 필요가 없다. 단지 말씀을 기도로 읽자.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기도하자. 결국, 여러분들은 성경 전체가 기도의 책임을 보게 될 것이다! 성경의 어느 장이나 말씀의 어느 부분으로도 기도할 수 있다. 성경은 바로 그 책, 거룩한 책이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온 모든 말은 세상의 최고의 것일지라도 어느 것과도 다르다. 세상은 사람의 말뿐이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책 안에 있는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비록 어떤 단락은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기도로 그것을 읽으면 여전히 영양 공급을 받는데 이는 그분의 말씀 안에 하나님의 어떤 것이 진정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바로 그 호흡이다. 말씀을 설명하거나 해석할 필요가 없다. 단지 말씀으로 기도하면 된다. 말씀을 읽고 조사하고 이해하고 배우는 것을 잊으라. 반드시 기도로 읽어야 한다. 그 후 결국 여러분은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이러한 방식을 실행한다면 양육하고 강건케 하는 무언가를 안에 받아 이것이 여러분을 능력 있게 하고 항상 생명을 줄 것이다.

아마도 여러분은 로마서 전체를 잘 알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여전히 여러분은 한 두 구절을 기도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우리의 음식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매일 매일 그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 우리가 얼마큼 많이 알던 지에 상관없이 우리는 여전히 먹어야만 한다! 아는 것과 먹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반드시 음식을 알 뿐 아니라, 먹어야 한다. 몇 번이나 요한복음을 읽었는가? 아마 50번도 넘게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많이 그 책을 여러분의 영양 공급과 누림으로 취했는가? 요한복음을 알고 이해하고 심지어 외우는 것은 한 가지이다. 하지만 그것을 취하고 먹고 조금씩 누리는 것은 또 다른 것이다. 수 년 동안 그리스도인이었을지 모르나, 몇 년 동안 그리스도인이었던 성경을 몇 번 읽었던 간에 성경을 그냥 읽을 뿐 아니라 기도로 읽어야만 한다! 반드시 성경을 먹고 참여하고 날마다 누려야 한다.

다른 이들과 함께 기도로 읽음

더 많은 누림과 영양 공급을 얻고 말씀을 합당하고 적절하게 기도로 읽기 위해서는 우리는 몸인 교회가 필요하다. 우리는 사적으로 말씀을 기도로 읽으며 누릴 수 있지만 다른 그리스도인 한 무리와 함께 한다면 삼층천에 있게 될 것이다! 이 것에 대한 설명은 음식이 단지 한 지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온 몸을 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팔을 위해 음식을 먹고 손이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몸이 음식을 먹고 음식은 몸을 위한 것이다. 원칙은 몸을 위해 먹는 것이지 단지 지체들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말씀을 읽는 최선의 방법은 몸의 다른 지체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혼자 기도로 말씀을 읽음으로 유익을 얻겠지만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할 때와의 차이를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형제 자매들과 함께 모여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네 단어가 있다: 빠르고 짧고 참되고 신선함. 먼저 우리는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빨리 기도하면 생각하거나 고려할 시간이 없다. 그 다음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짧아야 한다. 왜냐하면 긴 기도는 작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긴 기도를 짓는 것을 잊어버리고 짧은 말이나 문장을 말해내면 된다. 이것을 빠르고 짧은 방식으로 하라. 또한 참되어야 하며 가장해서는 않된다. 참된 방식으로 말하라. 마지막으로, 우리의 기도는 낡지 않고 신선해야 한다. 신선해지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의 말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이 책의 각 부분과 각 줄은 기도로 쓰일 수 있고 가장 신선한 기도가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오는 가장 합당한 방법임을 수천 명이 증거 했다. 이 실행은 그들의 삶에 혁명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이상해 보이지만 연습과 경건한 마음이 있다면 산 영을 만질 것이다. 만약 이것을 혼자서 그리고 단체적으로 실행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 여러분 안으로 분배된 그리스도의 풍성들을 증거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적 생명안에서 축복과 성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말씀을 접해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분에 의해 양육 받을 때, 여러분은 성숙까지 자라는 사람이 되어 생명이 충만하고 이러한 살아 계신 분으로 적셔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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