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으로 말씀을 기도로 읽기

기도로 말씀읽기는 역사를 걸쳐 내려 온 그리스도인의 성경적 실행입니다. 마르틴 루터와 조지 뮬러와 위트니스 리와 다른 이들의 간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방 교회에 있는 믿는이들은 기도로 말씀 읽기를 누립니다.

우리의 영으로 기도로 말씀 읽기

다음은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가 2000년에 출판한 위트니스 리의 영 안에서 주님과 서로 거하는 생활 제6장입니다.

성경 읽기: 마 4:4, 딤후 3:15-17, 요 6:63, 엡 6:17-18상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이루는 수단

성경은 우리에 관한 하나님의 기본적인 갈망이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시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 심지어 우리의 누림이 되시어 우리를 충만하고 만족하게 하시며, 그 결과 우리에게서 그분 자신을 살아 내시고 우리를 통해 표현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처럼 자신을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시어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시려면, 두 가지 수단이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위대하고 거룩하시며, 또한 매우 신비로우십니다. 우리 편에서는 날마다 그분을 접촉하고,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과 누림으로 그분을 우리 안에 받아들입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영을 통해 자신을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시어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실 수 있다고 알려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극히 위대한 두 선물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극히 위대한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말씀은 기록되어 확실하게 우리 손에 주어졌으며, 우리는 날마다 그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고 숙고하며, 심지어 연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대해 우리의 생각으로 엉뚱한 상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은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생각을 성경 말씀에 고정하고, 그 말씀을 소화하며, 그 말씀을 씹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적어도 하나님의 계시와 그분께서 표현하신 갈망을 접촉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은 나를 접촉하기 원하고, 나도 여러분과 접촉하기 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침묵한 뒤 서로 떠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에게서 여러분 안으로 들어간 것이 없고, 여러분에게서 내 안으로 들어온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말함으로써 서로 접촉하고 서로 안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눈으로 감정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나를 보고 내가 여러분을 볼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웃는 것을 보면 여러분은 내가 기쁘다는 것을 알고, 여러분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보면 나는 여러분이 슬프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눈으로 아무리 많은 것을 전달해도, 실제 상황을 여전히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왜 눈물을 흘립니까? 이야기해 보십시오.”라고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이야기하면, 여러분의 사정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나는 여러분의 관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러분이 자세히 풀어 설명하는 것은 하나의 계시입니다. 여러분이 말한 뒤에 나는 여러분의 입장에서 그 사정을 보게 됩니다.

그때 나는 여러분이 아마 오늘 아침 아버지에게 부당하게 책망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동시에 여러분이 왜 길거리의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지도 이해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내가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고 공감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쏟아 놓을 곳이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나는 여러분이 왜 눈물을 흘리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계시일 뿐이며, 여러분 자신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위로하는 말을 하여 여러분도 나의 관점을 받아들이게 할 수는 있지만, 나 역시 여러분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만 주셨다면, 우리는 그분의 뜻을 이해하고 기껏해야 그분의 계시를 알 수 있을 뿐,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두 번째 단계를 취하셔야 합니다. 곧 그 영이 되셔야 합니다.

나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육체가 되셨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그분은 피와 살이 있는 몸을 입으셨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시어 우리를 죄들에서 구속하셨습니다.

구속의 일을 성취하신 후, 그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 하반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죄들을 자백하며 구주로 받아들일 때,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분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이것은 참으로 신비한 일입니다.

헬라어에서 ‘영’에 해당하는 단어는 프뉴마(pneuma)로, ‘호흡’으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죽음과 부활 후에 주 예수님은 그 영이 되셨으며, 이 영은 호흡입니다.

이 점에서 중국어는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누군가가 죽으면 우리는 그가 죽었다고 말하기보다 ‘숨을 거두었다’, 곧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고 말합니다. 숨을 거두었다는 것은 더 이상 호흡이 없다는 것이고, 호흡이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 63절은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생명은 그 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명의 영은 생명의 호흡입니다. 호흡은 영이고, 영은 호흡입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부활 안에서 생명의 영, 생명의 호흡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63절 하반절).

여기서 영과 생명은 다시 함께 놓여 있습니다. 영인 것은 생명입니다. 이것은 영과 호흡과 생명이 모두 하나라는 뜻입니다. 호흡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가 이것을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때로 병에 걸리면 숨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는 숨이 부족한 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합니다. 또 다른 예로, 자동차 타이어에 공기가 부족하면 주유소에 가서 공기를 넣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에 호흡이 부족하면, 병원에 가서 ‘공기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말씀과 그 영이심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뿐 아니라, 우리 안으로 숨을 불어 넣으신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은 21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장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이셨다고 말합니다. 말씀은 주님 자신입니다. 주님은 말씀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표면적으로 성경에는 이야기와 역사와 책망과 경고와 가책을 느끼게 하는 말씀과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을 때 얻는 것은 이것들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얻는 것은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을 읽고도 그리스도를 얻지 못했다면, 헛되이 읽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받아들이기 위해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십니다. 요한복음은 먼저 그리스도께서 말씀이시라고 알려 줍니다. 그런 다음 말씀이신 이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시어 땅에서 33년 반 동안 사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알려 줍니다.

요한복음 19장은 그분께서 십자가에 계실 때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말합니다(34절). 피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구속을 상징합니다. 물은 우리가 생명을 받아들이도록 생수가 되시는 그 영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을 통해 피로 상징되는 구속을 성취하셨으며, 생수이신 그 영을 흘려 보내시어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성취하신 후, 그분은 20장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날 저녁에 그분은 돌아오셔서 제자들 가운데 서셨습니다. 이번에 돌아오신 것은 이전과 달랐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는 육체 안에 계셨지만, 이제 부활하신 후에는 영이십니다.

그분은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그 영으로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의 박해를 두려워하여 문과 창문을 굳게 닫아 두었습니다. 주 예수님은 문을 두드리지도 않으셨고, 아무도 문을 열어 드리지 않았지만, 갑자기 그들 가운데 서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당황하여 유령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신 몸으로 오셔서 제자들 안으로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처음에 주님께서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시라고 알려 주고, 끝에서는 주님께서 호흡, 곧 그 영이시라고 알려 줍니다. 1장에서 주님은 말씀이시고, 20장에서는 그 영이십니다. 먼저는 말씀이고, 그다음은 그 영입니다.

그리고 그 책의 중간에는 요한복음 6장 63절이 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요 6:63)

요한복음의 시작에는 말씀이 있고, 끝에는 그 영이 있으며, 그 사이에는 말씀과 영이 있습니다. 생명을 주시고 사람들이 생명을 갖게 하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영과 생명입니다.

말씀만 있다면 뜻의 표현만 있을 것입니다. 그 영이 없다면 주님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말씀과 그 영이 있습니다.

주님과 말씀과 그 영, 이 셋은 하나입니다. 주님은 말씀이시며 또한 그 영이십니다. 말씀은 그 영이고, 그 영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셋은 하나입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은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라고 말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말씀이 그 영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영이 말씀이라는 것은 믿기 어려워합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그 영의 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영은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엡 6:17)

말씀은 그 영이고, 그 영은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6장 63절은 말씀이 그 영이라고 말하며, 에베소서 6장 17절은 그 영이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따르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 따라서 주님은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20장 22절에서는 주님께서 오셔서 제자들 안으로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내쉬신 호흡은 성령이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 영이시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더욱이 성경에는 주님께서 그 영이시라고 말하는 다른 두 곳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 하반절은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시는 영이 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고린도후서 3장 17절은 “주님은 그 영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 63절, 에베소서 6장 17절, 고린도후서 3장 17절이라는 이 세 구절은 주님과 말씀과 그 영이 모두 하나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일해 넣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

앞에서 언급한 구절들에 따르면, 우리는 주님께서 하나님이시고, 말씀도 하나님이며, 그 영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주님과 말씀과 그 영은 하나입니다.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해, 주님이신 이 하나님은 말씀과 그 영이셔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은 “온갖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라고 말합니다. 기도와 간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길입니다.

이것은 어머니가 음식을 준비하여 식탁에 차려 놓은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여러분이 와서 그것을 먹는 것뿐입니다. 음식을 받아들이는 가장 좋은 길은 그것을 먹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음식을 보거나 연구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먹으러 옵니다.

부모들은 장난스럽고 말을 듣지 않는 자녀들이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음식 연구를 전문으로 하면서도 자신은 제대로 먹지 않는 영양학자들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하나이지만,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읽습니다. 후스 박사는 연구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읽었으므로, 성경을 수준 높은 문학 작품으로만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도 성경을 읽을 때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기만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나는 우리가 모두 성경이 단지 연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식사가 연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한 것인 것과 같습니다.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을 받아들이며, 그 결과 음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에서 바울은 그 영과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그 영의 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으며, 그 영은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여기서 그는 그 영과 말씀을 하나로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 독자는 그 영의 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나도 젊었을 때 그렇게 배웠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영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영이 아니라면, 그것은 검이 될 수 없으며 단지 말이나 교리나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자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 영이어야 하며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검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온갖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기도했을 뿐 아니라, 구체적인 방식으로 간구하기도 했습니다. 기도는 일반적인 것이고, 간구는 구체적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바울은 ‘온갖 기도와 간구’로 기도했습니다. 온갖이라는 말에는 매우 다양한 방식이 포함됩니다. 큰 소리로 기도할 수도 있고, 작은 소리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빠르게 기도할 수도 있고, 천천히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로 말씀 읽기는 한 가지 방식만이 아니라 여러 방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배우자와 함께, 여럿이 함께, 집회 안에서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온갖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그 영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 온갖 기도와 간구로 기도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거나 연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말씀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나아갑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을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요 3:16)

이 구절을 단지 바라보거나 읽기만 한다면, 열 번을 읽어도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두 손주가 나를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그들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을 영어와 중국어로 암송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은 매우 빠르게 암송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암송을 들은 뒤,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너희 두 아이는 어리석구나.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했구나.” 그들은 읽었을 뿐 아니라 암기하기까지 했지만, 말씀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6절은 여전히 그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나는 거의 60년 동안 이 구절을 받아들여 왔습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알도록 믿음을 강하게 해 준 것이 바로 요한복음 3장 16절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연구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기도로 읽었습니다. 비록 기도로 말씀 읽기가 무엇인지 몰랐고, 그 용어를 들어 본 적도 없었지만 말입니다.

나는 여전히 그날을 기억합니다. 당시 나는 나의 구원에 대해 아직 분명하지 않았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읽기만 했지만, 점차 읽는 것에서 받아들이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라는 말씀을 읽고, 나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런 다음 다시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저도 세상에 속한 사람이므로 저를 사랑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저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구절의 원래 표현대로 읽었지만, 결국에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기도의 어조와 대명사가 바뀌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이처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저에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것은 제가 그분을 믿음으로써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거의 60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 장면을 매우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나는 속으로 기뻤을 뿐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탄을 포함한 모든 것을 향해 선언할 확신으로 가득했습니다. “나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고, 기도로 말씀 읽기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나는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말씀을 기도로 읽고 있었습니다.

나는 혼자 기도로 말씀을 읽었을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도로 읽도록 가르쳤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읽어 볼까요? 제가 함께 읽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함께 읽는 동안 나는 그들이 말씀을 기도로 읽도록 도왔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 가운데 일부가 주님께 이끌렸습니다. 이것이 기도로 말씀 읽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숨을 내쉬시고 우리는 들이마심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그 실질은 그 영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편에서 성경은 그분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며, 우리 편에서는 들이마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숨을 내쉬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며,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러 나아갈 때, 단지 죽은 문자만 읽고 하나님께서 내쉬신 것을 들이마시지 않는다면, 성경은 여러분에게 죽은 문자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고, 우리의 기도는 우리가 숨을 들이마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쉼과 들이마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호흡해 들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무리 숨을 내쉬셔도, 우리가 들이마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우리의 누림과 공급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이 성경 앞에 나아가면서도 그 안에 있는 생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지만, 그것을 기도로 바꾸면 여러분이 숨을 들이마시는 것이 됩니다. 성경 전체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쉬신 것을 어떻게 여러분 안에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성경 말씀으로 기도함으로써입니다. 성경 말씀을 기도로 바꾸는 순간, 하나님께서 내쉬신 것이 여러분이 들이마시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들이마시는 것은 영과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영과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영이 될 때, 그것은 또한 생명이 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이 든 많은 형제자매들이 성경을 사랑하며, 나 역시 성경을 사랑합니다. 성경을 읽어 온 58년의 체험 가운데 나는 한 가지 비결을 배웠습니다. 곧 성경을 읽는 가장 유익한 길은 기도로 읽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단지 일반적인 방식으로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다.”라고 읽는 것도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들과 땅이 하나님께 창조되었다는 것, 곧 그 기원을 알려 주는 계시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지식일 뿐이며, 여러분은 그 말씀에서 공급과 양분을 얻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 4:4)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성경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주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마귀의 세 가지 유혹을 처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거룩한 성경을 가리킵니다.

성경 66권의 첫 구절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이것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일치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쉬신 것을 단지 읽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말씀은 단지 지식과 계시와 교리가 될 것입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무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데 유익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양육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서 어떻게 양분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 말씀을 기도로 바꿈으로써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읽는 것과 다른, 기도로 말씀 읽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음식이라고도 알려 줍니다.

요한복음 6장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생명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63절). 35절에서 주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입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57절).

당시 주님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하셨으므로, 63절의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육체는 무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요 6:63)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의 음식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음식이 부엌에서 준비되어 식탁에 차려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와서 먹어야 합니다. 먹지 않으면 양분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한 가지 일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모든 선하고 살아 있고 강한 그리스도인은 이 한 가지, 곧 생명의 말씀을 먹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날 온 세상은 영양을 고려하여 먹는 것에 큰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 결과 사람의 수명이 늘어났습니다. 중국에는 사람이 70세까지 사는 것은 드물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나는 이제 거의 80세가 된 것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립니다. 나의 비결은 먹는 데 있습니다. 나는 날마다 합당하게 먹습니다. 그 결과 나보다 젊은 여러분에게 뒤지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먹는 가장 좋은 길은 기도로 말씀 읽기임

그러므로 우리의 결론은 선하고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날마다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하고 건강하기 원한다면 먹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먹어서는 안 됩니다. 합당하게 먹어야 하며,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합니다. 나는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이 예외 없이 모두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바쁩니다. 아무도 한가롭게 앉아 있지 않습니다. 사탄은 누구도 한가롭게 앉아 있도록 두지 않을 것입니다.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에 다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루 종일 그런 일을 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바쁠 것입니다.

그러나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의 생활에서 바쁘다라는 말을 없애야 합니다. 젊은이 여러분, 잡담하려고 전화하는 시간을 아끼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읽고 주님을 먹을 충분한 시간이 생길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그리 많은 시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루에 30분이면 매우 좋습니다.

식사할 때 우리는 불규칙하게 먹지 말고 합당하게 먹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침과 점심과 저녁, 하루 세 번 식사하는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을 철저히 지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말씀을 먹으러 나아갈 때에도 분명한 시간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먹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먹지 않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기분이 좋을 때에도 먹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도 먹어야 합니다.

더욱이 먹는 것을 가려서는 안 됩니다. 성경 전체를 읽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날마다 구약과 신약에서 일정한 분량을 순서대로 읽는 것입니다. 구약은 창세기 1장에서 시작하고, 신약은 마태복음 1장에서 시작하십시오.

순종하는 자녀들은 어머니가 차려 주는 것을 무엇이든 먹고 건강하게 자랍니다. 그러나 음식을 가리는 아이들은 대개 건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나의 이 작은 권면을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나는 수십 년 동안의 체험을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신학이나 성경 교사들의 가르침에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체험에 따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이 두 가지 위대한 수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영과 그분께서 내쉬신 호흡을 통해 자신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분은 숨을 내쉬시고, 우리는 들이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들이마십니다.

가장 좋고 가장 확실한 기도는 주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기도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열심히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 전체가 여러분의 기도서입니다. 한 문장이나 한 구절을 읽고, 그 말씀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기도할 때 지나치게 틀에 박혀서도 안 되고, 항상 이리저리 흔들려서도 안 됩니다. 먼저 영을 사용해야 합니다. 영으로 주님을 접촉하고, 그분의 보배로운 피로 여러분을 깨끗하게 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영으로 주님을 접촉할 때마다, 여러분은 그분의 피로 깨끗하게 될 필요를 느낄 것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옛 창조와 육체와 자아 안에 있으므로 더럽혀져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고, 잘못된 일을 하거나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육체입니다. 우리가 육체이므로 피로 깨끗하게 될 필요가 있습니다. 옛 창조에 속한 사람들로서 우리는 더럽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그분을 접촉하러 나아갈 때마다, 먼저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오, 주님,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저를 깨끗하게 해 주십시오.

구약의 예표는 누구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속죄제물과 속건제물을 드려야 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아갈 때, 그분을 여러분의 속죄제물과 속건제물로 취하고, 그분의 피로 깨끗하게 해 주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깨끗하게 된 후에는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영 안에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이 살아나면, 자신의 생각에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에 따라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더 이상 생각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을 사용할수록 생각은 더욱 예리해지고, 사고는 더욱 분명하고 지혜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에서 시작하십시오. 곧 여러분 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에서부터 주님을 접촉하십시오. 그분의 말씀으로 읽고 기도하십시오. 다르게 하거나 독창적으로 하거나 큰 소리를 내려고 지나치게 애쓰지 말고, 그저 읽고 기도하며 기도하고 읽으십시오.

참으로 감동을 받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멘, 오, 주님, 얼마나 좋은지요! 주님을 얼마나 찬양하는지요!

이러한 기도로 말씀 읽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온 존재 안에 새겨져 여러분의 공급이 되게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며, 가르치고 가책을 느끼게 하고 바로잡고 의로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딤후 3:16)

이러한 방식으로 말씀을 기도로 읽어 주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면, 어떤 말씀은 우리에게 가책을 느끼게 하고, 어떤 말씀은 가르침이 되며, 어떤 말씀은 우리를 바로잡고, 어떤 말씀은 의로 교육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온전하게 되어, 온갖 선한 일을 위하여 완전히 준비됩니다. 이것은 공자와 맹자의 책을 읽고 윤리와 도덕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과 다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을 통해 기도함으로써,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영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분의 말씀은 우리 안에서 공급이 될 뿐 아니라, 깊은 속에서부터 우리에게 가책을 느끼게 하고 우리를 가르칩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을 읽는 합당한 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힘을 주시고, 날마다 이것을 실행하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페이지의 성경 인용은 「한국어 회복역 성경」(한국복음서원)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