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기도로 읽기

기도로 말씀읽기는 역사를 걸쳐 내려 온 그리스도인의 성경적 실행입니다. 마르틴 루터와 조지 뮬러와 위트니스 리와 다른 이들의 간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방 교회에 있는 믿는이들은 기도로 말씀 읽기를 누립니다.

기도로 말씀 읽기

다음은 리빙 스트림 미니스트리가 1991년에 출판한 위트니스 리의 소책자 기도로 말씀 읽기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젖을 먹어 양육을 받는 것입니다.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갓난아기는 제대로 자라지 못할 뿐 아니라, 곧 매우 약해지고 결국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난 후에도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주님을 우리의 영적인 젖과 양식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양분이 없으면 우리 역시 제대로 자랄 수 없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영적으로 죽게 될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주 예수님은 우리가 마시고 먹을 수 있는 잔치로 자신을 제시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그분은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생수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책의 6장에서는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생명의 떡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2장은 우리가 “모두 한 영을 마시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마시고 먹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을 누리고 우리의 영적인 양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의 모든 공급이 되시기 위해 자신을 잔치로 제시하셨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이름이 위대한 ‘나는 …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는 내 백성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음식임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갓난아기들처럼 말씀의 순전한 젖을 사모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젖으로 자라서 구원에 이를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께서 좋으시다는 것을 맛보았다면,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벧전 2:2-3)

이 구절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주님을 맛보는 방법을 분명히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은 ‘말씀의 순전한(순수한) 젖’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맛보려면 말씀의 젖을 우리 안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양육을 받게 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성경은 맛보았다고 말합니다! 주님에 관한 이런 방면이나 저런 방면을 우리가 안다고 말하지 않고, 주님을 맛본다고 말합니다. 말씀의 젖을 마실 때 우리는 실제로 주님을 맛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맛보는 길은 단순히 말씀의 젖을 마시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연구하거나 배우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더욱이 맛보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몸을 양육하시는 길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누리고 주님께 양육을 받기 원한다면, 말씀 앞에 나아가 주님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이 성경에 대해 가진 관념은, 성경이 일종의 가르침이며 교리로 가득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알려는 의도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 생활 전체를 돌아볼 때, 얼마나 많은 말씀을 우리 영의 음식으로 받아들였습니까? 정직하게 대답한다면, 우리 대부분은 아주 조금밖에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배우고 이해하기 위해서만 성경 앞에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지식나무가 아니라 생명나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나무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성경을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은 문자가 사람을 죽인다고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성경을 문자의 책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생명의 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능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말씀의 주된 기능은 아닙니다. 성경의 주된 기능은 하나님을 생명과 생명의 양식으로 우리 안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에 관한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우리 안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단지 알고 이해하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음식을 먹듯이 하나님의 본질에 속한 무언가를 우리 안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이 실질은 음식처럼 소화되어 우리 존재 자체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장 6절은 우리가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이 구절을 여러 번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양육을 받는다’라는 말에 주목한 적이 있습니까?

주님을 찬양합니다! 사도 바울의 관념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음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동일한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단지 지식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언제나 우리를 양육하고 공급하는 음식으로 여겨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10절은 “건강한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킹제임스역은 ‘건강한’ 대신 ‘건전한’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각을 위한 건전한 교리일 뿐 아니라, 생명을 위한 건강한 교리입니다.

‘건강한’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영어의 ‘위생’이라는 단어에 해당합니다. 위생은 건강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건전한 말씀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양육하고 공급하는 건강한 말씀이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은 사람들의 사례가 적어도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제가 그것을 먹었더니 …”라고 말했습니다(렘 15:16상).

무언가를 먹는 것은 단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소화하여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것입니다. 소화하여 자신의 일부로 만든다는 것은 무언가를 자신 안으로 받아들이고 소화하여, 그것이 자신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은 사람의 두 번째 사례는 에스겔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언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습니다(겔 3:1-3). 그리고 요한계시록 10장에서는 사도 요한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님의 말씀이 제 마음의 즐거움과 기쁨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렘 15:16하). 이것은 일종의 누림입니다. 말씀은 먹은 후에 즐거움과 기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누림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받아들여지고 소화되어 우리 존재 자체의 일부가 된 후에는, 안으로는 기쁨이 되고 밖으로는 즐거움이 됩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제 입맛에 어찌 그리 단지요! 제 입에 꿀보다 더 답니다! (시 119:103)

말씀은 참으로 누림입니다. 우리의 입맛에는 꿀보다 더 달고 더 즐겁습니다.

이 구절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배우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더욱이 맛보고 먹고 누리고 소화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인 음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 4:4)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우리를 양육하는 영적인 음식입니다. 우리는 이 음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

하나님의 말씀의 실질, 곧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 답은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입니다. (딤후 3:16)

킹제임스역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이라고 번역하지만, 원문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호흡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 4:24). 그 영은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입니다. 탁자가 나무이듯이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호흡이고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에게서 내쉬어진 것은 반드시 영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이나 본성은 영입니다. 말씀은 단지 생각이나 계시나 가르침이나 교리가 아니라 영입니다. 그 영은 하나님의 말씀의 실질 자체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그분이 하신 말씀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요 6:63). 계시나 생각이나 가르침은 결코 생명이 될 수 없지만, 말씀은 영이므로 생명입니다.

이 책의 본성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본질입니다. 이 책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접촉하고 그분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로 말씀을 받아들임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며, 우리의 영적인 누림과 양육을 위한 것임을 보았다면, 이제 우리는 말씀 앞에 나아가는 합당한 길을 보아야 합니다. 그 길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에베소서 6장 17-18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영의 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영은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엡 6:17)

하나님의 말씀이신 분은 그 영이십니다. 이어서 18절은 “온갖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라고 말합니다. 두 구절을 함께 읽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온갖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 그 영의 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 영은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엡 6:17-18)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까? 온갖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로 말씀 읽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온갖 기도를 통하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도로 말씀을 읽는 방법

단순히 말씀을 펴고 아침과 저녁에 몇 구절을 기도로 읽으십시오. 어떤 말을 짜내려고 생각을 사용할 필요가 없으며, 읽은 내용을 곰곰이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읽은 바로 그 말씀으로 기도하십시오. 모든 페이지와 모든 구절에는 살아 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로 말씀을 읽을 때 눈을 감을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하면서 눈을 말씀에 두십시오. 성경 66권 어디에서도 기도할 때 반드시 눈을 감아야 한다고 말하는 구절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다는 구절은 있습니다(요 17:1). 그분은 기도하시면서 하늘을 보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교리적으로 논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기도할 때 눈을 감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생각을 닫는 것이 더 좋습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기도로 읽을 때,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라고 적힌 성경 지면을 바라보십시오. 그런 다음 눈을 말씀에 두고 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도하며 이렇게 말하십시오.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아멘! ‘나는.’ 오, 주님, ‘나는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아멘! ‘이제는 더 이상.’ 아멘. ‘내가 사는 것이.’ 할렐루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 (갈 2:20 을 기도로 읽는 본보기)

그다음 요한복음 10장 10절로 넘어가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라는 말씀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눈을 성경에 두고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온 것은.’ 아멘! ‘내가 온 것은.’ 할렐루야!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생명을 얻고.’ 할렐루야! ‘생명.’ 아멘! ‘생명.’ 오, 주님, ‘생명.’ (요 10:10 을 기도로 읽는 본보기)

문장을 구성하거나 기도를 만들어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말씀을 기도로 읽으십시오. 성경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기도하십시오. 결국 여러분은 성경 전체가 기도서라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어떤 부분의 말씀으로든 기도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유일한 그 책, 거룩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다른 어떤 것과도 다르며, 심지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과도 다릅니다. 세상에는 사람의 말만 있지만,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책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구절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구절을 기도로 읽는 동안 여러분은 여전히 양육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참으로 하나님께 속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그분의 호흡입니다.

말씀을 설명하거나 해설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순히 말씀으로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이해하고 배우는 것은 잠시 잊으십시오. 여러분은 말씀을 기도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 말씀을 참으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실행한다면, 여러분은 내적으로 매우 풍성한 양육과 강하게 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여러분에게 능력과 생명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로마서 전체에 매우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여전히 그중 한두 구절을 기도로 읽어야 합니다. 음식에 관해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우리는 날마다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음식에 관해 얼마나 많이 알든, 여전히 그것을 먹어야 합니다!

아는 것은 한 가지이고, 먹는 것은 또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음식을 알 뿐 아니라 먹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요한복음을 몇 번 읽었습니까? 어쩌면 50번 이상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책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을 자신의 양식과 누림으로 받아들였습니까?

요한복음을 알고 이해하며 심지어 암송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먹으며 누리는 것은 또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래 그리스도인이었든,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었든, 단지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기도로 읽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먹고, 받아들이며, 누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로 말씀을 읽음

더 많은 누림과 양육을 얻고, 말씀을 합당하고 충분하게 기도로 읽기 위해서는 몸, 곧 교회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기도로 말씀 읽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실행해 본다면, 셋째 하늘에 있는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음식이 한 지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팔을 위해 음식을 먹지 않으며, 손이 혼자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음식은 몸이 먹는 것이며, 몸을 위한 것입니다.

그 원칙은 먹는 것이 지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몸을 위한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말씀을 읽는 가장 좋은 길은 몸의 다른 지체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혼자 기도로 읽어도 유익을 얻겠지만,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모이면 그 차이를 알게 될 것입니다.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모여 말씀을 기도로 읽을 때, 기억해야 할 네 가지 말이 있습니다. 빠르게, 짧게, 진실하게, 신선하게입니다.

첫째, 머뭇거리지 말고 빠르게 기도해야 합니다. 빠르게 기도하면 생각을 사용하여 이것저것 따질 시간이 없습니다.

그다음 우리의 기도는 짧아야 합니다. 긴 기도에는 어느 정도 문장 구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긴 기도를 구성하려는 것은 잊고, 단지 한 구절이나 한 문장을 말해야 합니다. 빠르고 짧게 하십시오.

또한 꾸미지 말고 진실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진실하게 말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우리의 기도는 낡은 것이 아니라 신선해야 합니다. 신선하게 기도하는 가장 좋은 길은 자신의 말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책의 모든 부분과 모든 줄을 기도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은 가장 신선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는 올바른 길임을 입증했습니다. 이 길은 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계속 실행한다면 살아 계신 그 영을 접촉하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함께 모여서도 이것을 시도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써 자신에게 전달된 그리스도의 풍성을 간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적 생명에서 축복과 성장을 보게 될 것입니다.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말씀을 접촉하여 그리스도를 누리고 그분께 양육을 받음으로써, 여러분은 성숙을 향해 자라며 생명으로 충만하고 살아 계신 이분으로 적셔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 페이지의 성경 인용은 「한국어 회복역 성경」(한국복음서원)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