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본질

성경의 본질에 관한 인용문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성경을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성경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들과 다르다는 태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교과서는 단지 흰 종이에 까만 글자이고 단순한 지식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은 하나님의 영감이며 하나님의 영적 호흡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신령한 젖이며 생명의 떡이다. 영과 생명이며 심지어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때 우리는 그 영을 접촉한다. 우리가 그 영을 접촉할 때 성경은 우리의 실제적인 후원자이다. 우리는 단지 영적 호흡만을 호흡하고 신령한 젖을 먹고 영적인 음식을 먹고 그 영과 생명을 받을 뿐 아니라 우리를 지원해주고 우리의 생각과 사고들을 만족시켜주는 분명한 말씀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성령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도 있다. 우리는 이 둘을 나눌 수 없다. 만약 우리가 매일 매일 주님의 말씀을 읽는다면 주님의 말씀은 우리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알고 이해할 것이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말씀의 온전한 지식, 영문판 p.17-18)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흑백의 글자가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바로 그 호흡이며 심지어는 하나님이 호흡하심이다. 오직 우리가 하루종일 주님과 지속적이고 개인적이고 살아있고 친밀한 접촉을 갖고 있을 때만 그분을 호흡함으로 참되게 사는 것이다. 우리의 물질적인 생명은 우리의 호흡에 달려있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그는 죽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분을 호흡함으로 그리스도를 산다.

그러나 우리가 호흡하는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신가? 그분은 그 영안에 계시고 그 영은 말씀안에 체현되셨다. 우리가 단지 성경을 문자로 연구하는 방식이 아닌 살아 있는 방식과 주님을 호흡하는 방식으로 말씀앞에 나아올 때 마다 우리는 그분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그러면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과 생명과 풍성들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 온다. 그 결과 우리의 매일의 삶에서 우리는 그분으로 적셔지고 그분과 우리는 하나가 된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분과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하던 우리는 그분 안에서 한다.

하나님의 율법을 다루며 시편 기자들은 그들 자신을 주님께 열고 율법을 하나님의 산 말씀으로 여기며 하나님 자신을 접촉했다. 시편은 기도의 영과 영감과 하나님께 울부짖음으로 가득하다. 기도와 찬송안에서 시편기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숙고했다.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요소는 그들 안으로 옮겨부어졌고 그들은 그 요소로 적셔지고 침투되었다. 그들에게 율법은 단지 요구나 정죄나 규례들이 아니라 신성한 생명 공급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이었다. 시편기자들이 주님을 사랑하며 추구하는 자들이었기에 그들은 신성한 인격으로 적셔졌다. 그럴 때 그들이 했던 모든것은 하나님의 이름안에서 한 것 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다루심으로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기능을 체험하였다.

(위트니스 리, 출애굽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683-684)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지만 우리가 성경을 단지 흑백 문자로만 취하고 성경을 읽으며 직접적으로 주님을 접촉하지 않는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생명이 없는 책이 될 것이다. 바울은 “의문(원문은 letter: 글자)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3:6)고 말했다. 이 구절에 글자(의문)라는 헬라어 단어는 바울이 디모데 후서 3장 15절에서 성령을 말할 때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단어이다. 만약 성경을 글자로만 취한다면 죽이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영은 생명을 준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우리의 영안에서 주님을 접촉하면 말씀은 우리에게 영과 생명이 될 것이다. 우리의 영적 체험에서 이는 하나님의 호흡이다.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 마다 우리는 말씀의 근원을 접촉해야만 하고 이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다.

(위트니스 리, 출애굽기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661-662)


“하나님이 호흡하심”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하나님의 호흡임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은 영(요6:63), 뉴마(pneuma), 호흡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영이신 하나님의 체현이다. 그 영은 그러므로 성경의 바로 그 본질과 실체인데 이는 인(phosphorus)이 성냥의 본질적 실체인것과 같다. 신성한 불을 피우기 위해 성경의 영과 우리의 영이 “부딪혀야” 한다.

그 영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성경은 또한 그리스도의 체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시며(계19:13) 성경은 하나님의 씌여진 말씀이시다(마4:4).

(위트니스 리, 디모데 후서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51)


요한복음 5장 39-40절에서 주 예수님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성경은 주 예수님의 증거라고 말한다. 주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때 유대인 교사들과 인도자들은 성경을 상고하는데 열심이었다. 그들은 단지 읽은 것이 아니라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성경을 상고하고 연구했다. 하지만 주 예수님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너희는 영생이 성경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이 그리스도인 나에 대하여 말하는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성경에 영생이 있는 이유는 성경의 내용이 나, 주 예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직 나, 주 예수만이 영생이다.”라는 의미이다.

영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처럼 단지 영원한 축복이 아니다. 영생은 창조되지 않고 파괴될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이다.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며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다. “너희 유대인 선생들은 성경 안에서 영생을 가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나에 대하여 증거하는 성경을 상고하지만 나에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이것은 사람들이 생명의 주님을 접촉하지 않고 성경을 읽을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참된 필요는 동시에 주님 자신과 그분의 말씀을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과 그분의 말씀을 나눌 수 없다. 만약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주님을 나눈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 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이 그분의 말씀의 내용이심을 보아야 한다. 그분의 말씀은 그분의 표현이시며 담는 그릇이다. 성경은 병과도 같고 주님 자신은 병 안에 든 물과도 같다. 오늘날 여러분이 병을 갖고 있지 않다면 물을 마실 수도 없고 물을 갖고 다닐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물을 마시지 않고 병만 들고 있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물을 누리기 원한다면 반드시 병을 들고 물을 마셔야 한다.

(위트니스 리, 영안에서 주님과 상호 거하는 삶, 영문판 p.100-101)


“성경을 상고하는 것”은 “내게 오기”와 나뉠 수 있다. 유대 종교는 성경을 숙고 했지만 주님께 오기를 원치 않았다. 이 둘은 함께 해야 한다. 성경이 주님에 대해 증거하기에 주님으로부터 나뉠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을 접하지만 주님을 접하지 않을 수 있다. 오직 주님만이 생명을 주실 수 있다. 우리는 결코 주님 자신으로부터 성경을 나눌 수 없다. 우리가 성경을 상고할 때 마다 우리는 반드시 주님 자신께 나와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상고하고 주님을 접촉하는 것이 한 가지가 되게 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상고할 때 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을 주님께 열어드려야 한다. 우리의 눈이 말씀을 읽고 있는 동안 우리의 생각은 그것을 이해하고 우리의 영은 성경을 통해 주님을 접촉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 그럴때 우리는 우리의 지성으로 흑백의 글자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안에 생명을 갖는다.

(위트니스 리, 요한 복음 라이프 스터디, 영문판 p.176)